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윶읂(구칠즈)/단편

Kiss Me Darling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정신 없이 화려한 조명, 약간 취한 사람들의 열기까지, 유나가 가장 좋아하는 주말 밤의 분위기였다. 익숙하게 맥주를 받아 들고 친구들이 모여있다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클럽 안에서도 유독 신이 나 있는 제 친구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야, 아직 12시 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달리고 있으면 어떡해.”

 “어, 최유나다!”

 “유나 왔네? 오늘 못 올 줄 알았더니.”

 “은비 씨 허락은 받은 거야?”

 “쉿, 이름 말하지 마.”

 “딱 보니까 몰래 튀어왔네. 너 뒷감당 되겠냐?”

 “아 좀 조용히 하라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파묻힐까 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친구들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걱정하는 척 했지만, 이미 유나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들킬 리 없다는 자신감이 없었다면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와 있을 리도 없었으니까. 은비는 유나가 클럽에 다니는 걸 싫어했기에 완전히 끊었다고 다시는 안 가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지만, 가끔 이렇게 몰래 친구들과 클럽에 와도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다.

 

 

 

 

 

 

 

 “하긴, 여자친구 생겼다고 클럽에 안 오면 최유나가 아니지.”

 “그래도 은비 씨 사귀고는 몇 달 동안 아예 발도 안 들였잖아.”

 “얘들아, 그게 바로 참사랑이라는 거야.”

 “웃기고 있네. 그럼 지금은 뭔데?”

 “참사랑도 가끔은 쉬어야 더 잘 하지 않겠어?”

 “와, 얜 진짜 생긴 건 엄청 반듯하게 생겨가지고 말하는 건 완전 양아치야.”

 “칭찬이지?”

 “말이나 못하면.”

 

 

 

 

 

 

 

 

 

 전교 1등, 전교회장, 과 대표, 과 수석, 모범생 최유나. 그런 모습만 아는 사람들은 지금 유나를 보면 제 눈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스테이지뿐 아니라 클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서도 눈으로는 계속 지나가는 여자들을 쳐다보고 있는 게 유나의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은비 씨 같은 여친 두고 클럽 오면 양심에 찔리지 않냐?”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쓰레기 같잖아.”

 “아닌 줄 알아?”

 “여기서 만나는 건 그냥 노는 거지. 연애랑은 완전히 다르다고.”

 “그 여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대?”

 “내가 어떻게 알아, 다시 본 적도 없는데.”

 “와, 저번에 걔랑도 다시 안 만났어?”

 “걔 누구?”

 “왜 그, 엄청 하얗고 눈 크고,”

 “그만둬, 얘 어차피 기억 못할걸? 만난 여자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야, 하며 유나는 마지막 남은 맥주를 한번에 들이켰다. 한창 철없을 때에는 분명 아무 여자나 마음에 들면 만나고 차버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선하고 잘난 얼굴에 탄탄한 몸, 살갑고 다정한 말투까지 갖춘 유나에게 모두들 금방 마음을 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다 옛날 얘기였다. 은비를 만나고 나서는 가끔 여자들을 구경하러 오기는 했어도 누군가를 꼬셔서 하룻밤을 보내는 게 내키지 않아 그만둔 지 오래였다.

 

 

 

 

 

 

 

 

 

 “다 옛날 얘기라니까.”

 “그건 그래. 저번에 어떤 애가 대놓고 얘 허리 감싸고 안고 난리 났는데도 같이 안 나가더라.”

 “최유나가 변했어.. 연애가 그렇게 좋아?”

 “부러우면 너도 해.”

 “아, 재수없어.”

 

 

 

 

 

 

 

 

 

 유나의 도발에 친구들의 표정이 모두 일그러졌다. 20살 때부터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친구들이지만 유나가 연애 얘기를 할 때면 다들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귀를 씻으려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음악이 좀 더 빠른 곡으로 바뀌고 다들 금방 신이 나 들썩거렸다. 스테이지 위도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서로 눈만 맞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 순간, 자기들끼리 신이 난 친구들을 뒤로 하고 여자들을 훑던 유나의 눈에 무언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았지만 틀림 없었다. 동그란 정수리, 쌍커풀 진한 눈매, 작은 체구, 저건..

 

 

 

 

 

 

 

 

 

 

 

 “야, 저기 은비 씨 아니야?”

 “어? 최유나 여친?”

 “대박, 은비 씨 맞는 거 같은데?

 “...야, 뒤돌아 보지 말고 나랑 문 쪽으로 튀자. 아, 아니, 뛰지 말고 그냥 걸어서!!”

 

 

 

 

 

 

 

 

 

 은비와 눈이 마주친 순간, 유나는 모든 순발력을 끌어 모아 친구 한 명을 방패막이 삼아 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너무 급하게 뛰어가면 더 티가 날까 봐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와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건물 사이 틈으로 숨었다.

 

 

 

 

 

 

 

 

 “야, 최유나! 어디 갔어!!”

 

 

 

 

 

 

 

 

 

 건물 사이로 몸을 숨긴 지 1분도 안 되어 잔뜩 화가 난 은비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유나는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숨소리라도 나서 들킬까 봐 숨까지 참고 있어서 죽을 맛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왜, 이런 생각은 그 다음 문제였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인파 속의 유나를 찾던 은비가 택시를 붙잡는 것까지 훔쳐 본 후에야 참고 있던 숨을 몰아 쉬었다.

 

 

 

 

 

 

 

 

 “너 어떡하냐, 은비 씨 화 단단히 난 것 같은데.”

 “..일단 너 오늘 나 못 본 거다, 알았지? 나 먼저 갈게!”

 “야, 유나야! 최유나!”

 

 

 

 

 

 

 

 

 

 유나는 전속력으로 자취방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은비의 목적지는 분명 제 자취방일 테고 지금 이 시간이라면 택시보다 뛰는 게 더 빨랐다. 아까부터 미친 듯이 휴대폰 진동이 울리고 있었지만 그건 차차 해결할 문제였다. 무조건 은비보다 먼저 집에 도착해야 했다. 달리기라면 자신 있는 유나지만 왠지 계속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쾅

 

 

 

문이 좀 세게 닫혔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계속 집에 있었던 척을 하려면 할 게 너무 많았다. 유나는 옷을 여러 개 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나간 몇 시간 전의 제 자신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손등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클럽의 도장 자국을 벅벅 문질러 지우고 미친 듯이 빠르게 세수를 하고 나자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았다.

 

 

 

 

 

 

 

 “누구세요?”

 “최유나, 문 열어!”

 

 

 

 

 

 

 

 

 

 치약을 묻힌 칫솔을 입에 물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문을 열자 잔뜩 화가 난 은비가 서 있었다.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이, 걸렸으면 뼈도 못 추렸겠다 싶어 다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 은비야..? 온다고 연락도 없이?”

 “뭐? 연락도 없이? 야, 너 핸드폰 내놔.”

 “어?”

 “뭐 하느라 연락이 안 돼! 너 클럽 갔지?”

 “무슨 소리야, 지금 나 양치 중인데.. 일단 들어와.”

 “..계속 집에 있었던 거 맞아?”

 

 

 

 

 

 

 

 

 

 분명 클럽에서 본 사람이 유나임을 확신하고 잔뜩 화가 나서 달려온 은비이지만, 완벽한 유나의 연기에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게 유나의 방에 발을 들였다. 졸린 듯 눈을 비비면서 양치를 하는 연기는 유나 제가 봐도 연기대상감이었다. 수건으로 닦아낸 제 얼굴은 마치 바로 자다 깬 것처럼 말끔하고 거짓말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선한 인상이어서 이렇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어쩐 일이야, 갑자기? 나 보고 싶었구나?”

 “너, 봐줄 때 솔직히 불어. 오늘 클럽 갔지?”

 “아까부터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어.”

 “너.. 너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너 오늘 클럽 갔어?”

 “그..그게.. 자꾸 애들이 너 클럽에서 봤다고 하잖아!”

 “뭐야, 그래서 나 의심한 거야?”

 

 

 

 

 

 

 

 

 

 이제 전세는 역전되었다. 은비는 제 눈으로 본 유나와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유나 중 어떤 걸 믿어야 할지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나는 드디어 한껏 여유를 되찾은 미소를 띄웠다.

 

 

 

 

 

 

 

 

 

 “그게 아니고..”

 “맞는 거 같은데? 부재중전화 3개, 이거 다 클럽에 있는 줄 알고 전화한 거네?”

 “아니, 나는.. 그냥 네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이상해서..”

 “나 그때 씻고 있어서 못 받았어.”

 “..애들이 너 봤다는 데 찾아갔는데 너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

 “와, 너 정말 클럽도 갔었어?”

 “…진짜 아니야?”

 “자기야, 나일 리가 있어?”

 

 

 

 

 

 

 

 

 

 유나는 은비의 허리를 감싸 안고 웃으며 결정타를 날렸다. 곧 은비의 귀가 새빨개지는 게 보였다. 평생 갈고 닦은 순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계속 똑바로 은비의 눈을 쳐다보자 오히려 시선을 피하는 건 은비 쪽이었다.

 

 

 

 

 

 

 

 

 

 

 “나 의심했으니까 벌 받아야겠다.”

 “ㅁ,무슨,”

 

 

 

 

 

 

 

Kiss me, darling.

 

 

 

 

 

유나는 은비를 품에 가둔 채 그 빨간 입술에 입술을 맞대었다. 클럽에 간다고 신경을 썼는지 평소보다 훨씬 빨간 입술에 아까부터 입을 맞추고 싶었으니까. 거칠게 파고드는 입술과 혀에 은비의 숨소리가 금방 달아올랐다. 잠시 입술을 뗀 유나가 씨익 웃었다.

 

 

 

 

 

 

 

 

 “아직 벌 안 끝났어.”

 “흣, 아, 최유나!”

 

 

 

 

 

 

 

 

 

 미안해, 자기야.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줘. 앞으로 조심할 테니까. 유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은비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허리를 쓸었다. 입술을 꽉 깨무는 은비의 얼굴이 예뻤다. 아, 예쁘다, 우리 은비. 아까 봤던 그 누구보다도.

 

 

 

 

 

유난히 길었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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